드디어 취미를 찾았다. 그림도 그려보고(카페에서 전시도 하고), 연극도 해보고(혜화에서 공연도 하고), 춤도 배웠지만(청하처럼 추고 싶었다), 죄다 끈기가 없었다. 그런데 왠지 이번에는 정말로, 진짜로, 취미를 찾은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썩 개운하지는 않다. 그동안 살면서 배웠던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기 때문이다. 태권도 검도 피아노 같이 어릴 때면 모두가 한 번씩 해보았을법한 것들부터, 클라리넷 바이올린 장구 드럼(심지어 단소)처럼 생소한 것들까지 모두 나의 취미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가볍게 요가 복싱 캘리그라피를 배웠지만 모두 세 달이 되기 전에 그만두었고, 다른 취미는 어떨까 싶어 시작한 요리(마침 자취를 했고) 사진(DSLR을 샀고) 여행(해외를 몇 번 다녀왔지만)은 은은한 즐거움이었지만 내가 원했던 확고한 취미는 아니었다. 나에게 확고한 취미는 뭐랄까, 기업 입사 서류 ‘취미’란에 당당하게 적어 넣을 수 있는, 마치 상사가 ‘취미’란을 보고 “와 종수씨는 이게 취미야?”라고 물으면 “하하 2년 정도 되었죠.”라고 답하는 그런 성질의 취미였다. 독서라든지 영화감상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하하 2년 정도 되었죠.”라는 답을 하기에는 알맞지 않는 나이브한 취미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제목을 이미 보았으니 짐작하겠지만, 현재 나의 취미는 클라이밍(실내 암벽등반)이다. 화목 강습을 듣고 있고, 이제 3개월이 넘어갔다. 혹자는 일생일대의 취미를 찾은 것처럼 말했으면서 ‘겨우 3개월’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겨우 3개월’이 아닌 ‘무려 3개월’만에 내 인생 취미를 찾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운동을 믿고 의지하고 즐기기 때문이다.
클라이밍이 내가 되고 내가 클라이밍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이 글의 성격을 밝히도록 하겠다. 자고로 칼럼이라면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거나 일상 소재를 특정 깨달음과 연결하여 설파하려는 글로 이해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마치 클라이밍을 소재로 글을 썼으니 대부분 이 글의 마지막 문단을 ‘클라이밍은 팔힘으로만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온몸의 안 보이는 모든 근육을 동원해서 올라가야 합니다. 연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또는 ‘클라이밍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올라갈 방향을 찾고 주변에서 도움을 주듯이, 연구자 역시 함께 가야 합니다. 아자아자 신문연 파이팅!’으로 예상하기 쉽다. 이것은 완전한 오판으로 나는 정말로, 단지, 그저, 내가 드디어 찾게 된 취미를 소개하려고 글을 쓴다. 즉 취미가 없던 한 사람이 취미를 갖게 된 후 생긴 변화에 초점을 맞춘 글이다.
클라이밍을 만난 후 나의 변화를 설명하기 전에 이 운동에 대해 간략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하는 클라이밍은 실내 암벽등반으로 날씨와는 상관없이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다. 난이도에 따라 홀드(잡거나 밟는 지점)의 색이 달라 각자 수준에 맞는 문제를 풀 수 있다. 따라서 초보자와 숙련자가 함께 와서 즐길 수 있고 서로가 보지 못한 길을 찾아줄 수도 있다. 때로는 상대방의 길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때도 있다. 이런 특성으로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유니폼을 맞춰 입고 클라이밍을 즐기는 무리를 여럿 볼 수 있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점에서도 좋지만, 나에게 클라이밍의 가장 큰 매력은 ‘자세’다. 클라이밍은 단순히 팔힘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홀드의 배치에 따라 적절한 자세가 있다. 발의 위치가 높을 때는 ‘하이 스텝’으로 체중을 싣고, 오른발이 지탱할 곳이 없는데 왼쪽 팔이 멀리 나가려면 ‘아웃사이드 스텝’으로 몸의 방향성을 틀어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오로지 팔힘과 어깨힘으로만 움직이기 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레벨업 하는 자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난이도마다 색이 다르니 어제의 내가 오를 수 있는 것과 오늘의 내가 오를 수 있는 것이 확연히 구별된다.
취미가 생기고 가장 달라진 것 역시 나의 ‘자세’였다. 이전까지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막연하게 미래가 불안했을 때, 우울증에 걸린 거북이마냥 누워서 침대 위를 기어 다녔다. 하루 종일 밥을 먹을 때만 고개를 쓱 내밀었다가 금세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낮과 밤이 뒤바뀌고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흐릿한 그런 삶이었다. 그럴 때면 어둡거나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무기력함이 더 컸다. 일어날 힘도 없고 주저앉을 힘도 없어서 누워있는데, 누워있을 힘마저 없어서 결국 모든 게 다 힘들어지는 그런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클라이밍이라는 취미를 얻고, 일어날 수 있는 작은 힘이 생겼다. 현재 나는 초록색 난이도를 접수하고 파란색 난이도에 도전 중이다. 흰 노랑 주황 초록을 거치며 이제 파랑까지 온 것이다. 처음부터 파랑에 매달리려고 했으면 나는 곧바로 떨어지고 바로 포기했을 것이다. 하나씩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이곳에 있던 것처럼, 내 연구에서도 하나씩 풀다보면 어느새 나의 위치가 달라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힘을 취미에서 얻게 되었다고 확신한다. 취미가 비록 본업은 아니지만, 본업에 대한 나의 ‘자세’를 잡아주었다.
단순히 내가 취미를 찾았다는 것을 글로 설명한다고 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 와 닿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동영상으로 노랑 난이도에서 초록 난이도까지 발전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칼럼 특성상 그러지 못한 점 양해를 바란다. 혹여 메일을 댓글로 남긴다면 클라이밍 영상을 보여줄 의향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글을 마치며 현재까지 취미를 찾으려고 분투하는 모든 이에게, 본업에 지쳐서 다른 탈출구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작은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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