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깜짝 놀랐다. 청년(만19~34세) 대상으로 신규 도입한 정책 금융상품인 ‘청년희망적금’을 약 290만 명이나 되는 많은 청년이 신청했다. 이는 청년 인구의 약 28.1%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 연소득 3,6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 금융소득이 많은 자, 근로소득이 전혀 없는 자 등이 가입대상에서 빠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품 가입자의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애초 금융위원회는 예상 가입인원을 38만 명으로, 국회 예산처는 그보다도 적을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예산을 증액하여 2주간 신청한 청년들을 모두 지원하도록 주문하였다. 그간 많은 청년 대상 정책의 대상층이 너무 한정되어 있어 많은 가짓수에도 불구하고 체감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 대박’이 터진 셈이다. 그런데 청년 금융 및 부채와 관련한 정책 담론에 앞장서 온 생활경제 평론가 한영섭 씨는 자신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통해 청년희망적금을 일부 비판하였다. 이 글을 읽고 얼마간 진지하게 이 적금 상품에 관해 고민해 보았다. 그 결과로, 청년희망적금이 일단의 성공을 거둔 까닭과 이 정책의 미래에 대한 몇 가지 가설들을 떠올리게 됐다.
우선, 청년희망적금에는 왜 290만명이나 가입했는가? 내가 보기에 답은 간단하다. 가입이 쉽기 때문이다. (이 상품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청년에게 단비가 된다는 식의 확대해석은 넣어 두는 게 좋겠다.) 전국민재난지원금 때와 마찬가지로 모바일을 통해 어렵지 않게 상품 가입까지 이루어졌다. 은행과 금융 어플리케이션이 청년 고객들에게 문자와 푸시 알림 등을 통해 상품 안내와 가입 일자 안내 등을 ‘떠먹여’ 주기도 했다. 나 또한 후술할 이유들 때문에 결국 가입은 하지 않았으나, 주로 이용하고 있는 두 개의 은행으로부터 문자 안내를 받았고, 가입신청 결과 미리보기 서비스를 통해 내가 가입대상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까지 엄지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완료했다.
가입이 이토록 간편하며 정책 대상자에게 가까이 닿은 일 자체로는 매우 반가운 일이며, 늘 전달체계의 효과성을 고민해 온 청년정책이 하나의 좋은 사례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적금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의 이해관계가 함께 걸려 있다. 청년희망적금을 취급한 11개 은행은 각기 기본 금리 5% 외에 우대 금리 조건들을 내걸면서 경쟁했다. 은행 계좌와 연결된 신용카드 결제실적, 월 급여 이체를 해당 은행 계좌를 통해 고정적으로 입금받는지의 여부, 은행에서 개발한 추가상품인 인증서 발급, 이번 적금 상품 가입이 해당 은행 첫 거래인 경우 등이 우대금리 적용 대상이 되어 최대 금리는 연 6%에 달한다. 우대 금리 요건은 은행에서 취급하는 다른 예·적금 상품과 거의 유사하다.
청년희망적금 가입자가 폭증하면서 은행이 1조원의 손실을 떠안았다는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볼멘소리 등이 기사화되기도 했으나, 그 같은 손실은 가입자들이 일정 저축액을 납입하기 이전까지는 현실화되는 것도 아니며, 은행은 대규모로 유입되는 (젊은) 신규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20대 초반 “○○은행으로부터 우수 고객에게만 드리는 보험 혜택입니다”라는 전화를 받고 내 손으로 생애 첫 보험에 가입(당)하여 후회한 일이 있다. ‘청년’ 이름을 붙인 많은 사업이 실상 청년에게 주는 혜택의 크기보다 더 큰 이익을 자본에게 가져다주는 경우는 흔하다. 물론 이러한 이해관계가 맞아서 원래 없던 혜택이 청년에게도 돌아가는 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이면에 대한 주목을 놓지 말아야 한다.
청년희망적금은 결과적으로 청년에게 ‘희망’이 될 것인가? 희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혜택의 크기는 계층에 따라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적금은 원리상 꾸준히 일정한 금액을 저축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청년희망적금은 월 50만 원을 납부하여야 저축장려금, 고금리 혜택, 비과세 혜택 등 최대치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적금을 최소 12개월 유지하지 못할 경우, 5%라는 ‘파격적인’ 기본 금리조차 적용되지 않고, 1.18%라는 평범한 수준으로 이율이 떨어진다.
가능한 만큼 월 최대 50만 원까지 자유롭게 입금하는 방식의 적금 상품은 사실 시중에도 이미, 연령이 청년이나 20대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3~4% 대의 상대적 고금리를 보장하는 은행별 상품이 있다. 나 역시 20대 중반에 처음으로 적금 상품에 가입하였는데, 꾸준히 입금하고 만기까지 기다리는 일에 성공한 것은 단 한 번밖에 없다. 대학원생과 프리랜서로 살면서 소득의 월별 변동폭이 컸고, 조금 금액이 모일라치면 보증금을 올려야 하는 것처럼 목돈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생겨 적금을 해약하기 일쑤였다.
모든 청년정책이 청년 내 더 취약한 계층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세대 내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청년희망적금은 향후 가입대상 청년층 내에서 역진적 분배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다. 전혀 다른 사회경제적 배경을 지닌 청년들에게 다가올 가상의 미래를 떠올려 보자. 청년 A는 ‘부모 찬스’를 활용해서 월 50만 원을 전혀 문제없이 계속해서 납부할 수 있다. 이때 청년희망적금은 천만원 가량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세금 없이 상속할 수 있는 우회로로 작동한다. 부모 찬스는 없지만 월 250만 원의 소득이 있는 상용직 청년 B는 기존의 적금 내지는 투자 상품에 대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청년희망적금 쪽으로 돌려서 약간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저축액을 늘리면서 필요한 생활비를 지출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청년희망적금의 유행 이후로 벌써 SNS에는 적금을 넣느라고 치킨을 먹을 수 없다는 종류의 만화 컷이 반응을 얻고 있다. 소득의 변동이 큰 비전형 노동자 청년 C는 청년희망적금에 가입했으나 납입액이나 기간 등을 채우지 못해, 결과적으로 제도의 혜택을 아예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청년 C는 오직 자신의 개인정보만 은행에 내주게 된 셈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청년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희망적금은 신청하는 모든 청년에게 선별 없이 주어지는 대규모의 ‘혜택’이라는 점에서 기분 좋은 예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설계대로라면 제도의 본래 목적이 굴절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청년 내 계층 격차를 상쇄하는 데는 실패한 사례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향후 이 금융상품의 효과와 의미에 대한 여러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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