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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종수] 환대받는 브로콜리



대학원 입학에 회의적이었다. 이십 대 후반에 월급도 못 받고 어떻게 살아? 그랬던 내가 무려 서른이 넘었는데 이렇게 살 줄 정말 몰랐다. 나이가 뭐가 중요하냐고 응원하던 사람들도 대체로 서른이 넘어가니 방황이 좀 길지 않냐고 되물었다. 지독한 인간들. 여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운동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오전 실내 클라이밍 강습을 수강했다. 그때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었다. 평일 오전 시간 강습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방황’이었다.

평일 오전에 쉬는 사람은 주로 세 가지다. 학생, 프리랜서, 그 외. 학생은 평일 오전 시간을 당당하게 보냈고, 프리랜서는 매번 피곤해 보였고, 그 외는 자신을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당연히 나는 ‘그 외’에 속했는데, 정상 궤도를 과하게 이탈하니 어딜 가나 어울리기 어려웠다. 집에서도, 취미 생활에서도, 명절 때도, 심지어 학교까지도.

이렇게 방황이 내가 되고 내가 방황이 되니 괜히 어딜 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집에 있기도 그렇고 공부를 하기도 안 하기도 돈을 벌기도 안 벌기도 모든 게 다 애매해지고 이런 애매함은 방황의 굴레를 더욱 가속화 하여 종국에는……

오른손이 브로콜리가 되었다. 이유리의 소설 「브로콜리 펀치」 이야기다.

복싱선수 원준은 어느 날 오른손이 브로콜리가 된다. 원준은 상대를 때리는 걸 싫어했다. 그래도 시합에서 이겨야 하니 최면을 걸었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나는 이 사람을 미워한다. 내가 먼저 이 사람을 때려야 한다. 그렇게 미워하는 마음으로 살다가 원준은 깨달았다. 자신은 타인을 미워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할 줄 아는 게 복싱밖에 없다. 원준은 방황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른손이 브로콜리가 되었다.

최근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은 신인 소설가 이유리의 강점은 바로 따스한 환대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방황하는 원준에게 소설 속 인물은 조건 없이 환대한다. 누군가는 안쓰러워하고, “어머 브로콜리 저거 정말 오랜만에 보네, 우리 애 할아버지도 저렇게 된 일이 있었어.” 누군가는 위로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렇지 뭐.” 병원에서 간호사는 접수증에 ‘오른손, 브로콜리’라고 적어 원준의 방황을 아무렇지 않게 대했고, 의사는 푹 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밥 잘 먹고 약 잘 먹으라는 진찰로 해답을 제시했다. 물론 방황하는 원준은 돌팔이 같다며 세상을 믿지 못하지만……

원준의 주변에는 끝까지 방황하는 이를 환대하는 조력자가 있다. 화자인 ‘나’와 안필순 할머니, 박광석 할아버지는 원준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노래를 시킨다. 원준은 고함치듯이 노래를 부르고 마음이 편해진다. 바로 그때 오른손 브로콜리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정상 궤도 이탈이 곧 실패는 아니다. 남이 하는 대로 살지 않고 조금 늦었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방황은 몽실몽실하고 귀여운 브로콜리다. 방황을 그렇게 보기 위해서는 환대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클라이밍 강습의 ‘그 외’에게, 아니 세상의 모든 ‘그 외’에게는 환대가 필요하다. 그들은 잘못된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다. 잠시 오른손이 브로콜리가 되었을 뿐이다.

환대받은 원준은 브로콜리가 톡톡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브로콜리에서 꽃이 폈다. 마치 한 다발 꽃송이를 든 사람처럼, 원준은 자신의 방황을 바라보았다. 환대한 세상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선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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