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영주먹] 언론탄압의 현장과 연구활동가의 스케치

최종 수정일: 11분 전



영업을 막 개시한 <신진>에 글을 쓰려고 보니, 그 예전 <신문연칼럼>을 처음 쓰던 때가 기억이 난다. 무언가 문화연구자로서 자기기술지적인 스타일로 칼럼을 써보겠다는 생각으로, 처음 대학 강의에 나갔던 경험을 우왕좌왕 써냈더랬다. 이번에도 비슷한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있는 지금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2020년 말부터 전국언론노동조합이라는 곳에서 언론·노동운동가로서 살고 있는 문화연구자다. 


극단화된 언론탄압


12.3 계엄 사태 전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실은 언론계는 윤석열 정권 초기부터 계엄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에도 언론 탄압은 있었지만, 윤석열 정권의 언론 탄압은 더 극단적이었다. 우선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활용된 담론이 그랬다. 우선 노동혐오와 언론혐오에 기대어 언론과 언론인들을 자기 진영의 대적자로 만들고자 했다.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방송(KBS, MBC)을 좌지우지한다”라고 말한 권성동 원내대표의 발언이 대표적이었다. “가짜뉴스가 선거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라고 말하며 정권 비판 통제를 정당화하고자 했던 윤석열의 발언도 마찬가지였다. 또 인물들의 면면이 그랬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 탄압을 지휘했던 이동관이 윤 정권의 첫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됐고, 그 이후엔 극우 스피커로 변모한 이진숙이 방통위에 왔다. 방통위의 권한을 남용해 KBS와 YTN의 주요 인사들을 물갈이한 뒤엔, 고성국이나 배승희 같은 극우 유튜버들을 데일리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앉혔다. 


그리고 공적 미디어의 재원 및 지배구조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공격했다. 정권은 전기 사용료와 통합 징수되던 수신료를 급작스레 분리 징수하여 KBS와 EBS의 재원구조를 흔들었고, YTN의 공공기관 지분을 유진그룹에 팔아 민영화했다. 연합뉴스에 정부 구독료 명목으로 지급되던 예산도 80% 이상 삭감하여 정치적으로 압박했다. 언론인·언론사를 향한 노골적 위협도 자행됐다. 비판 보도를 한 기자 개인을 고소·고발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뉴스룸이나 언론인의 자택을 압수수색 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12.3 계엄과 연구자의 참여관찰


그리고 계엄 선포가 있었다. 언론노조 구성원들은 그날 밤 뜬 눈으로 성명서를 작성해 발표하고 비상대기 태세에 돌입했다. 계엄은 해제되었으나, 바로 12월 4일부터 계엄 규탄 기자회견과 저녁 집회가 잡혔다. 노상원의 계엄 수첩에 따르면 주요 언론인들도 수거 대상에 포함됐다. 언론노조 사무실 구성원들도 아마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 등 주요 인사들이 수거 대상에 포함됐을 거라고 추측했다. 당사자들은 격앙됐고,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한 농담을 서로 던지기도 했다. 중립성을 일정정도 요구받는 ‘언론’노동조합 입장에서 정권의 언론 탄압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퇴진’이라는 강한 구호를 외치는 것을 자제해오다가, 계엄 얼마 전에 겨우 외치기 시작했었는데, 계엄이 터진 덕분에 더 시원하게 외칠 수 있게 돼서 신난다고 말하는 동료도 있었다.


파면이 결정된 4월 4일까지 넉 달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의결된 12월 14일까지는 모두가 거의 매일 집회에 나섰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다 보니 집회 중반쯤 오한이 들었다가, 뒤풀이 때 겨우 체온을 회복하는 일도 잦았다. 이처럼 집회 참석은 힘들었지만, 사실 노동조합 운동가들은(적어도 언론노조는) 시간 외 근무에 대한 보상(대체 휴무 등)을 받는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손수 핫팩과 방석을 사 들고 집회에 참석하는 ‘일반’ 참가자들이 오히려 대단스럽고 존경스러웠다. 우리는 서로 거리에 나온 이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 대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넉 달을 버틸 수 있었다.  


윤석열이 파면될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조기 대선에도 대응해야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일들을 억지로 붙들고 대선용 미디어 정책 제안서를 만들었다. 정권발 언론 탄압을 방지하기 위한 방송3법 개정 요구부터, 언론 탄압의 실체를 규명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하라는 국정조사 요구, 지역신문 등 소멸 위기에 몰린 미디어들을 지원할 정책 요구까지 빼곡히 적었다. 그 와중에도 윤석열이 체포되는지, 헌법재판관이 마저 임명되는지 등, 대선 정책안의 쓸모를 결정할 중대 사안들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같이 운동을 하면서도 연구자 출신인 나와 언론인 출신인 (파견직 혹은 임원) 동료들 간에는 온도 차도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시절부터 윤석열 정권까지 겪으며 해고와 좌천을 경험한 언론인들에게 언론 탄압을 극복하는 일은 조금 더 신체적인 경험에 가까웠다. 2019년, MBC 기자인 임명현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부당 전보와 해고 등을 겪은 동료들을 인터뷰하여 논문을 썼다. 그에 따르면 ‘비인격적 인사관리’는 언론인들을 ‘잉여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공포로 몰아넣어 새로운 뉴스 생산 체계에 적응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는 수치심과 무력감, 패배주의 등이 동반된다. 언론 운동 복판에 있으면서도 일터에서 해고의 위협이나 부당한 인사 조치를 당할 것이라는 우려 등을 해볼 수 없었던, 또 연구자(또는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나름의 자율성을 확보해왔던 나로서는 온전히 알아챌 수 없는 경험이었다. 언젠가는 방송3법 개정안을 논하는 토론 자리에 초빙된 교수들에게 언론노조 위원장이 사태의 시급성을 성토한 적이 있었다. 나는 정교한 논의를 펴야 한다며 꼼꼼함을 발휘하는 교수들도 이해가 됐지만, 우리 위원장도 이해가 됐다.



연구활동가는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


팔자에도 없던 ‘운동’을 시작한 지 비상근 시절까지 포함해 6년째다. 이제 논문을 써도 때로는 성명서나 기자회견문을 쓰던 버릇이 나와서 논문 같지 않은 글을 쓸 때도 있다. ‘연구활동가’ 주체가 각광받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운동과 활동이 연구자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침식하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고민하게 된다. 어쨌든 공부하고 글을 쓸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심지어 이달부터 우리 사무실에선 ‘언론노조TV’ 같은 것을 하자며 내게 진행자 자리를 맡겼다. 오세훈과 서울시의회가 폐국 위기로 몰아넣은 TBS에서 우리 사무실로 파견나온 PD님은 ‘최욱은 잠을 안자며 방송을 고민한다’라며 나를 몰아세우는 중이다. 유튜브 등에서 허튼소리나 하며 영양가 없는(심지어 해로운) 패널 노릇을 하는 교수나 연구자들을 여럿 봐왔다. 공부에 소홀해지는 순간 나도 그런 것을 좇게 될까봐 너무 걱정스럽기도 하다. 


언론 운동은 중요하다. 사회의 극우화 단초까지 확인한 마당에는 더 그렇다. 운동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하자고 마음 먹지만, 양자를 모두 잘할 수 있는 걸까. 양쪽을 핑계로 양쪽의 질을 모두 양보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내가 되질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글. 이준형

편집. 김선우




1 Comment


Seon-Gi Kim
Seon-Gi Kim
8분 전

3년의 계엄을 견딘 언론노조를 응원합니다! 음, 하지만 너무 열심히 살진 마세요. 쉬엄쉬엄 천천히 가시죠!

Like

사단법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19 by 김선기.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