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의 어느날,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의 연구원인 채태준은 SNS에 ‘어느새부터 문화연구는 안 멋져’라고 썼습니다. 같은 그룹의 김선기가 그 말을 보고 채태준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채태준은 다시 김선기의 편지에 답을 보냈습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그리고 앞으로 주고받을 편지를 [어느새 문화연구는 안 멋져]라는 이름으로 소개합니다. 두 사람은, 왜 어느새 문화연구는 안 멋진지, 그렇다면 언제 문화연구를 멋지다고 생각했는지, 이야기를 주고 또 돌려 받을 예정입니다. 듣고 다시 말하며 냉소에서 벗어나길 기대합니다. 편지를 엿보는 독자들의 답도 기다립니다.
태준에게
"어느새부터 문화연구는 안 멋져."
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쓰인 이 말은 나를 2018년의 기록적으로 무더웠던 여름날로 되돌려 놓았어. 우리가 속한 지식 장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면서 새로운 계기를 모색하는 글쓰기를, 동료들과 함께 했었지. 당시 기준으로 15년을 이어온 문화연구캠프의 지속이 무산될 위기 앞에서, 처음으로 박사 선생님들이 아닌 박사과정 학생들이 캠프를 주도적으로 조직하게 됐고, 그건 우리들 앞에 갑자기 떨어진 일더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대로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어. "3세대 문화연구?"라는 제목으로 쓴 기조발제문에 우리가 담았던 문제의식은 요약하자면 내용과 주체, 네트워크 면에서 우리의 학문이 재생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그 말의 정체를 발가벗겨보면 그저 "다시 문화연구를 멋지게 하자"는 것과 다름 없는 얘기 아니었을까?
6년이라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 지났고, 난 그사이 많은 일들에 스스로를 투입해 왔어. 구체적으로는 몇 번의 문화연구캠프와 또 몇 번의 문화연구썸머스쿨, 또 몇 번의 문화연구학회 학술대회를 조직하는데 관여해왔지.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이라는 우리 단체를 만들어서 꽤나 많은 행사를 치르기도 했고. 이런 일들을 하는 내 동력이 무엇이었냐고 하면, 다른 게 아니라 책임감이었던 것 같아. "앞으로 우리가 ‘3세대 문화연구’를 새롭게 써 나가는 공동의 작업에 필요한 공동의 역할을 일정하게 자임하겠다는 선언"을 내뱉은 이상 문화연구의 이름을 달고 만들어가는 작당들에 열심히 참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숙제를 하듯 행사 실무들을 해왔던 거야. 때로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서 했지만, 멋지게 해내고, 또 문화연구를 멋나게 하고 싶었는데 때로는 굉장히 관성적인 채로 말이야.
그래서 "문화연구는 안 멋지"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나에게 하나의 성적표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그런데 이제 낙제점을 받은 그런 성적표. 화가 나기 보다는 반성을 하게 되는 건, 사실 나 또한 언젠가부터 학술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마음 깊숙한 곳에 풀리지 않는 불만이 쌓여왔기 때문이기도 해. 심지어 이건 내가 조직에 참여했던 행사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언젠가 한 번은 내가 조직위원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서 마음이 너무 힘들기도 했어. 지금 하는 그대로 관성적으로만 학술활동을 하는 게 어쩌면 최선인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비관주의에 빠져 있었고, 그래서 내게 해소하지 못한 의견이 있다는 걸 숨겨만 왔어. 하지만 지금 이렇게 너에게, 그리고 동시에 모든 동료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통해, 나는 이제까지의 우울에서 벗어나 소통과 담론으로 나아가고 싶어.
비슷한 일을 너무 오랫동안 반복하면 우울해진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정체되어 있다는 감각이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해왔던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이 감각이 내 개인적인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내가 속한 학술 장이 나를 지적으로 자극하지 못하는 오랜 정체기에 있다는 데서 왔다고 생각해. 그걸 잘 보여주는 게 문화연구 관련 학술행사들의 대주제일거야. (대주제라는 게 원래 어느 정도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또 다른 분과학문이라고 사정이 얼마나 다를까 싶긴 하지만) 문화연구 관련 행사에는 문화연구 고유의 이론적 쟁점과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가 늘 빠져 있어. 물론 각자로서의 문화연구자는 논문 게재를 하기 위해 새 연구를 할 때 가능하면 최신의 것까지 연구사를 훑어내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가 같이 모이면 '문화연구의 최전선'을 함께 탐구하지는 않아. 그러다보니 그게 무엇인지, 있기는 한 건지도 모르겠는 상태가 됐어.
대신 모여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몇 가지 유형으로 축약 가능해. 하나, 문화연구의 정체성에 대한 되풀이되는 물음과 반성. 둘, 시의적인 사건 한 두가지를 놓고 문화연구가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논의하기. 셋, 특정한 키워드를 동원하여 작금의 사회상, 시대상을 진단하기. 이러한 이야기들도 필요는 하겠지만, 분과학문으로서 문화연구의 지식 그 자체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런 얘기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해. 스스로의 존재 의의에 대해 계속 묻는다는 것 그 자체가 지체와 불안의 증거는 아닐까? 문화연구에서 현실개입은 중요하지만, 이런저런 사건과 시대에 대해 말 늘어놓기를 문화연구자로서의 전문성 없이 한다면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말을 얹는 사람'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학술행사에서 느끼는 이런 이물감은 사실 정말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내가 학술행사 조직에 참여하면서도 기존의 관성을 깨기보다는 그걸 반복해왔던 것 같아서 슬픈 마음이야. 어떤 한계에 부딪혀서였든 말야. 이론적 논쟁과 성과가 있는 종류의 학술행사를 추상적으로 그리긴 하지만, 나 또한 그런 걸 본 적도 없고 또 그런 걸 만들어가는 방식을 어디에서도 배운 적은 없네. 하지만 이렇게 터놓고 얘기를 꺼내는 걸 첫 시작으로, 방향을 조금은 틀어서 다른 미래를 준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왜 문화연구를 안 멋지다고 생각했는지 네 얘기를 더 들려주면 좋겠어. 그게 내가 생각을 더 펼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선기에게.
문화연구가 너무 좋았어. 아니, 문화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좋았어. 얼마나 좋으면, 박사과정까지 진학해서 문화연구를 공부하기 위해 칠백만원을 매년 두 번씩 내고 대학원에 다니겠어.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한국장학재단에서 생활비 대출 이백만원씩 두번, 백오십 만원씩 한 번을 받았으니까. 삼천(만원)의 빚 만큼, 그리고 남은 학기에도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대출을 받을 터이니 사천(만원)의 빚 만큼 나는 문화연구를 좋아해. 그건 내 진정성이야.
2018년, 기록적인 무더위 속에서 “3세대 문화연구?”라는 이름의 발표를 준비했을 선기를 생각해. 내게 2018년은 서로다른 두 가해자의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었던 한 해로 기억돼. 그 해 여름 나는 석사과정에 진학했지만, 사실 그 시절 무얼 읽었는지, 무얼 보았는지 생각나는 게 거의 없어. 두 사건은 내가 속한 학술공동체에서 일어났거든. 전반기에는 C강사, 후반기에는 A교수.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보도자료를 쓰고, 학교 본부에 질의나 항의를 한 뒤엔 성명문을 썼어. 학내에서 연대서명을 받다가 수업에 들어가서는 톡방에서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하면서 한 해를 보냈어. C와 A는 모두 문화연구자로 스스로를 정체화했어. 그런데 역설적으로 나는, 두 사건을 지나온 뒤 문화연구자들과 문화연구가 좋아진거야. 두 사건 앞에서 많은 다른 문화연구자들이 기꺼이 손을 내어주었거든. 좀 느끼하지만, 뜨거운 응답(?)이었다고. 학부 시절의 마지막 한 학기,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한 뒤의 첫 학기는 내게 그런 한 해였어.
A교수 징계위는 이듬해까지 이어졌고, 그 다음해 파면을 촉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했지. 선기와 친구들이 그 자리에 와준 것도 잘 알고 있어.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문화연구와 문화연구자들이 정말 짜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던 때에, 나는 문화연구가 더 좋아졌어. 문화연구자들이 멋졌어. 물론, 문화연구자들의 글 역시 좋았지. 그런 걸로 문화연구에 대해 내가 멋짐을 느낀 순간들을 적어볼 수도 있을거야. 구조주의와 문화주의 사이의 종합이라는 스튜어트 홀의 문화연구 내러티브일 수도, 아니면 (내가 공부했던 곳의 특징이지만)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매개하는 학술적 실천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지. 주변화된 존재와 텍스트를 지식의 대상으로 길어올리는 재현정치, 학술적 재현의 방식에 관한 이론적이고 방법론적인 문제제기, 비평과 연구를 오가는 전방위적 글쓰기까지, 모두 이유가 될 수 있을거야. 하지만, 그런 정당화는 내겐 사후적으로 당위를 만들기 위해 학업계획서 같은 데에나 적을 법한 것들이야. 불투명해. 그러니 내가 문화연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투명한 하나의 이유를 찾자면, 그건 문화연구자들이 문화연구를 소개하는 내러티브가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행동들이었어. 앞으로도 쭉 그 시절을 기억하고 감사할 거야.
뒤늦은 고백이지만, 그런 문화연구가 ‘어느새 더 이상 안 멋지다’는 포스팅은 어그로를 끌고 싶었기 때문이야.
여느 어그로처럼, 누군가의 반응을 기다렸어. 지금 누군가가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다면, 이 구절에서 멈춰서길 바라면서. 누군가 말을 이어주길, 누군가의 글로 말미암아 내 생각을 다시-비추어봄을 할 수 있길 원했어. 그런데, 선기에게 편지를 받았네. 고마워. 조금 약오를지 모르겠지만 그때고 지금이고 나는 문화연구자들이 여전히 멋지다고 생각해, 이런 편지를 받다니 말이야. 그런데 문화연구자들 만큼 문화연구가 멋진지는 모르겠어.
어느새 문화연구가 멋지지 않다는 생각은, 아주 경험적인 순간에 찾아왔어. 선기도 기억하려나? 우리 같이 모 학술대회에 간 날이지. 발표자가 ‘비즈니스 게이 퍼포먼스’에 관한 사례를 보여주는데, 청중들이 한바탕 웃음이 터진 거야. 비단 그날 뿐이었을까? 나는 문화연구 관련 학술대회의 웃음포인트를 하나 알고 있어. 발표자는 유쾌하게 현실의 이질적이고 혼종적 사례를 소개해. 청중들은 한 바탕 웃지. 문화연구는 그 웃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 같아. 이런걸 본다니, 이런걸 한다니, 하하!! 물론, 문화연구자도 인간이야.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 말하고 싶은게 아냐. 그냥, 문화연구자들이 자주 가정하곤 하는 정치성의 현실이 그렇다는 이야기야.
문화연구는 저널리즘의 상징생산을 객관화하기 보다는, 기존의 상징 생산물들에 학술적 근거를 보론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문화연구는 표면을 보고, 심층이라는 이름의 표면을 재생산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아닐까? 아트테크나 스니커즈 리셀에서 금융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주체성을 발견하는 게, 어떤 의미에서 발견인건지 나는 궁금해. 빨간색을 보고 레드라고 말한다거나, 낫을 놓고 기역 자를 말하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더글라스 캘너의 1997년 글을 기억하려나. 문화연구와 비판이론이 그 접점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글 말이야. ‘문화연구의 위기’를 말하는 자리나 지면에서 이따금, 아니 자주 관성적으로 등장하는 글이지. 비판이론을 정치경제학으로 바꿔써도 말이 될거야, 저자는 간햄이나 펙으로 바뀌겠지. 비판사회학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행해졌어. 비판이론, 정치경제학, (비판)사회학 모두로부터 문화연구는 질타의 대상이 된 거야. 결국, 세 갈래의 비판이 도착한 곳은 똑같아. 문화연구가 계급/물질/’현실’으로부터 멀어졌다고 말이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들이, 논의들이 전개되었지. 아도르노를 빌어서, 이글턴을 빌어서, 제임슨을 빌어서, 그들의 내용 뿐 아니라 문투까지 빌어서 쓰인 그 글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문화연구 학술대회들에서 꽃피는 웃음을 떠올렸어. 속으로 물었지. 진짜 문화연구가 정말 정치경제학과 달라? 문화연구가 비판이론(Critical Theory)과 다른가? 문화연구랑 비판사회학이 진짜 다르다고? 내가 보기에는 정말 비슷했는데 말이야. 이 격차는 왜 만들어진거지, 어디서 오는거지? 문화연구자들이 다른 문화연구자를 만나면 자주 하는 말버릇이 있어. 요즘 문화연구자들은 이런 것 안 읽어요. 요즘 문화연구자들은 이런 데 관심 없어요. 요즘 문화연구자들은 이런 것을 하진 않아요. (나도 그런식의 말하기를 즐겼던 것 같네) 그런데 놀랍게도 ‘요즘 문화연구자들은 정치경제학, (비판)사회학, 비판이론에 관심 없잖아요’라고 넌지시 말을 건네는 그이의 이름은 문화연구자야. 그리고 그이는 정치경제학, (비판)사회학, 비판이론의 애독자이지. 대체 뭐지, 문화연구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걸 찾기 위해서인지 최근 몇년 동안, 아니 거의 십여년 동안 문화연구와 관련된 학술대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이런 것들이었어. ‘문화연구의 지형들을 살펴본다’, ‘문화연구의 대가로부터 지향에 관해 듣는다’, ‘문화연구의 이론적 실험들을 살핀다’. 문화연구와 관련한 학술대회의 마지막 세션은 주로 기획세션이고, 거기엔 꼭 (위기의) 문화연구라는 단어가 들어가. 형식은 주로 라운드 테이블이야. 그런식의 라운드 테이블에서 내가 자주 느낀 건, 이게 서로다른 세대의 문화연구자들이 자신과 타인의 안녕을 확인하는 일년에 한 번 열리는 가족행사와 다름이 없다는 거야. 적당한 수준에서 서운함을 나누고 마찰은 그 불꽃이 튀기도 전에 화목한 웃음소리로 진압돼.
문화연구의 계보, 문화연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진행되는 수많은 라운드 테이블들은 문화연구자들의 실존적 불안을 해소하는 일년에 한 번 열리는 문화적 의례같아. 부재한 공통의 영역을 취약함이라는 ‘위기감각’으로, 상징으로 해우하는 자리같아. 당연하게도 문화연구자 내에서 취약함의 질과 양은 모두 다를텐데, 그건 정말 문화연구자들을 묶어줄 수 있는 테두리가 될수 있을까? 슬프게도 선기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어떤 학술대회에서는 준비위원회에 참여해서 그런 행사를 기획했어. 그것이 부끄러웠어. 이런 식의 자리밖에 만들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어. 무엇보다 너무 잘 알고 있거든, 멋진 문화연구자들이 모인 자리가 왜 멋지지 않은지 말이야.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송구스러울 뿐이야. 학술대회를 준비하는 데에 힘을 내어주는, 또는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는 것 자체가 지금의 학술장에서 대단한 일이라는 걸 나도 조금은 알아. 그럴 때 라운드테이블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는 경제적 세션 구성이라는 것도, 이제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 각자가 자신의 삶을 버텨내면서, 어떤 마음으로 기꺼이 함께 모이는 행사의 일을 거들겠다고 나서는지를 생각하면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야. 학술장에 있는 시간이 하루하루 늘어갈수록, 현재 자신이 가진 자원과 시선들을 문화연구자들이 모이기 위한 자리에 기꺼이 내어주는 선배들에 대한 존경은 커져.
어렵고 또 궁금해. 어떻게 다른 방식이 가능할까. 문화연구의 ‘이론적 위기’는 매번 다르지만 거의 유사하게 설정되었고, 이를 돌파하기 위한 시도들도 있었지. 그런데 실제로 보게되는 건 달랐어. 논문 내에서 이론이나 핵심 개념을 설명할 때, 소위 ‘경제적인 것’을 두껍고 자세히 기술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니까. 신자유주의에 관해 길게 읊는건 해결책이 아니니까. 정치경제학적인, 비판이론적인, 비판사회학적인 문제틀을 보다 두껍게 가져올수록 분석이 상응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아. 방법을 개선하기 위해 쓰여진 이론논문에서는 칼춤을 추다가, 그 이론이 적용된 경험연구는 학부수준의 단순함을 보이는 논문들을 발견키도 했어. 이런 식의 분업을 나는 학제적 프로젝트인 문화연구 내에서 자주 발견하곤 해. 물화된 학제성으로 말이야. 그렇기에 정치경제학과 비판이론과 비판사회학의 비판으로부터 문화연구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일면의 진실만 보여준다고 생각해. 문화연구의 이름으로 출간된 많은 논문들은 정치경제학이, 비판이론이, 비판사회학이 세계를 살피는 렌즈를 이미 그대로 가져오고 있다고 생각해. 관념적으로 특정하게 ‘부족한’ 문화연구를 한 편에 설정해 두고, 거기에 다른 분과학문 또는 접근의 문제틀을 더하면 정말 공백이란 것이 메워질까? 문화연구가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총체적 접근을 지향해야할까?(그것이 정말 가능한가?) 문화연구가 비판사회학이나, 비판이론, 정치경제학을 넘어서 문화를 다루는 유일한 접근법이 되어야 하는 걸까? 문화연구라는 관념을 문화연구자들의 실천으로 객관화하는게 필요치 않을까? 네가 편지에서 ‘이론적 쇄신이 필요치 않을까’ 말했을 때,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어. 그건 이론의 더하기 모델과는 다를 거니까. 우리 어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선기의 편지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는데 말이지. ‘우린 비슷한 일을 너무 오랫동안 반복해오며 우울해 진 것일까’라고 했잖아. 나는 좀 다르게 그 문장을 곱씹었어. 나는 학부시절 자유인문캠프라는 자기교육운동을 했는데, 어떤 점에서는 지금 하고있는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과 꽤나 비슷한 활동이었던 것 같아. 비슷한 활동들을 너무 오래 지속하며 얻게 된 권태감이 있는 걸까. 우리는 서로 다른 연구자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든다면서 학술대회를 열거나, 서로 다른 학술지에서 발표되는 문화연구적 접근들을 아카이브하겠다고 무턱대고 사람들을 모집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또 실패했지. 젊은 문화연구자의 연구계획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열거나, 함께 공부하는 세미나를 열었지. 언제부턴가 다른 연구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글을 읽는 것이 퍽 즐겁지 않았던 것 같아. 뭔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까분 건 아닐까. 똑똑한 사람들 옆에서 있다고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인양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오랫동안 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직 학생인데, 과정생 주제에 뭔가 된 듯한 기분에 취하지는 않았을까. 내 앞가림, 내 연구, 내 작업, 내 논문부터 매끈히 써야할 시간을 나는 허비한 것이 아닐까. 너를 힘들게 하는 정체감이 나도 힘들게 만들고 있는 걸까.
그렇게 가만히 땅굴을 파다가, ‘문화연구가 멋지지 않다’고 악다구니 삼아 적어보았어. 싫은 건 나였는지도 몰라. 너무 과분한 답장을 받았다.
네 편지를 읽고서 며칠, 나는 질주하는 나를 떠올려. 숨이 가득 차오르고, 심장은 터질듯 뛰고, 코로 아주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는 순간 말이야. 얼굴을 타고 땀이 흐르고, 고개를 돌리면 선기 너와 친구들이 함께 숨을 몰아쉬며 웃고있는 모습을 말이야. 얼마전 신문연 친구들에게 내가 말했던 것 기억나? ‘문화연구는 모르겠고, 우리 현대문화연구소(CCCS)는 하자.’ 그때 우리 이름이 꼭 문화연구가 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다행히 우리 신촌문화연구그룹이 아니라,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이네. 하하. 사회과학 내에서 우리가 만드는 어떤 변곡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뛰어. 권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아. 이런 울림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어(나는 일희일비의 아이콘이니까), 얼마나 지리멸렬하고 권태로운 하루하루를 묵묵히 지나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무엇보다 박차고 달리는 나를 꿈꾸지만, 그래서 어디로 또 어떻게 향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다음 편지가 또 필요한 거겠지? 선기일까 아니면 다른 친구일까.
애정어린 편지에 감사하며, 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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