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편영시] 왜 우리는 이 일을 계속하려고 하는 걸까?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 4월 5일
- 4분 분량

수정에게
수정~~~~~~ 졸업 축하해! 학교는 다르지만, 입학과 졸업을 같이 할 수 있게 되어 기뻐. 정말 고생 많았어. 〈이 편지는 영국으로부터 시작되어…〉라는 코너명은 내가 지은 거야. 재밌지? 제목대로라면 나는 일단 영국에 가야 하는 걸까? 영국에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막상 내가 첫 타자로 편지글을 써야 한다니 너무 민망하네. 졸업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어떤 말을 쓰면 좋을지 어렵다.
저번 달은 졸업식 시즌이었지. 수정이 단톡방에 올린 졸업 사진 속에서 쿼카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 기쁜 순간이라는 걸, 그리고 기뻐해도 된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어. 나는 졸업식장에 앉아서도 ‘졸업인가?’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 한 시기를 마무리하는 방식에 서투른 것 같아. 졸업 가운을 억지로 입은 느낌이었어. 석사과정이 끝나면 내가 계속 공부를 해도 좋을지 답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박사과정 진학을 준비하는 지금은 끝을 맺기는커녕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야.
새삼 내가 대학원에 왜 들어왔고 무엇을 기대했는지 돌아보게 되네. 석사과정 2년 반이 무척 길었고, 하루하루 마음만 바쁜 시기가 지나고 보니 초심을 까먹어 버렸어. 우리가 왜 대학원에 들어가려고 했는지 깊이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 수정은 왜 대학원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
예전 일기를 보니까, 나는 막연하게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아. 대부분 사람이 그렇겠지? 그게 확신에 찬 선택이 아니라는 것도. 학비는 어떻게 하지, 남들은 ‘사회인’이 될 때 나는 기약 없는 공부를 지속해도 좋을지 계속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어. 그러니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석사과정까진 해볼 만하다’라고 말할 때 귀가 팔랑팔랑거렸어. 잘 모르겠지만 다른 생각해둔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니 깊이 생각하지 말자, 공부가 적성에 맞는지 확인이라도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학원에 들어왔어.
공부 자체는 꽤 적성에 맞았던 모양이야. 운 좋게도 대학원 생활 자체가 어렵진 않았고 좋은 선배와 동료, 교수님들을 만나고 연구를 매개로 여러 다른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어. 이들과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 그게 내 공부에 깊이감을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공부를 무수히 많은 ‘일’들 중 하나로 대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조교로 일하면서 여러 행정 서류를 작성하고 행사 실무를 뛰고, 프로젝트 연구보조원으로 일하면서 여러 작업을 쳐내고, 동시에 발제하고 논문을 쓰고. 연구를 직업으로 택했을 때 내가 하게 될 일들과 생계를 이어가는 법을 익히면서 이 대학원 생활에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계속 보아왔지.
사실 이런 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긴 했어. 단순히 조교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마련하고 나머지는 공부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공부만 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어. 여기저기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업계 관계자’는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평가하고 있는 가운데에서 ‘업무적으로 신뢰할 만한’ 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라면 강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속에서 살았던 것 같아. 그래야만 계속 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냥 공부가 좋아서 들어온 학생이면 안 되고, (예비) 직업인으로서 이 일을 해내야 한다는 거.
나는 종종 내가 계속 이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자문하곤 해. 대학원 생활을 비교적 어렵지 않게 해낸 건 앞선 선배들이 불안정함을 견뎠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들의 호의에 너무 많은 빚을 졌기 때문이었어. 초심자의 행운일 수도 있고. 근데 더 이상 ‘과정생’이 아니라 한 명의 독립된 연구자로서 스스로 많은 것들을 조직해야 할 때 나는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이들에게 호의를 베풀 만한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그것과 별개로 ‘연구’는 또 다른 거였어. 가끔 신문연에 들렀을 때 수정이 책상에 앉아서 석사논문에 집중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첫 논문을 쓴다는 건 그게 어떤 연구든 간에 머쓱하고 부끄럽고, 주저하게 되는 일이니까. 석사논문을 쓰는 시기는 너무 힘들었어. 쓰기가 어렵다기보다, 공부가 아닌 ‘연구’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너무 혼란스러웠던 거야. 여러 책을 읽으며 지적 만족감을 채우는 것과 어떤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연구하는 것은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일은 아니었던 거지. 연구를 위한 스킬에 그동안 너무 소홀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까 갑자기 회의감이 들더라고. 나는 그동안 뭘 했지? 왜 이렇게 헤매고 있지? 그래서 나는 정말 ‘공부만 좋아하는’ 게 아닐지 생각하기도 했었어. 앉아서 책을 읽는 게 좋을 뿐이라면 대학원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책을 읽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좋을 뿐이라면 대학원생이어야만 할까?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에만 만족할 뿐이라면 연구자여야 할까? 나는 왜 연구자를 목표로 삼은 걸까? 이런 질문은 일단 접어두고 어쨌든 졸업은 해야겠으니 꾸역꾸역 논문을 썼어.
그렇게 얼레벌레 졸업하고 나니 결국은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와 있더라. 무엇이 내가 공부를 계속하게 만드는 걸까. 분명한 건 장래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은 아니라는 거야. 오히려 이게 내 길이 맞는지 끊임없이 의문이 들겠지. 그런다고 연구를 통해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야. 그런 비장함은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돈만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지. 그러기엔 세상에 돈 벌 수단은 많으니까. 예전에 외국 대학 홈페이지를 찾아보다가, 도미야마 이치로라는 일본 학자가 자기소개를 써놓은 걸 본 적이 있어. “물음에 연루되는 것, 그리고 ‘흥미로워!’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연루되어 간다는 것은 물음이 다음 물음으로 연쇄되어 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질문투성이가 되어 가며 세계는 잠정적이 되고 미래에 열려갑니다. ‘미래를 만들어내는 기계’. 그는 연구 행위를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말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학을, 문화연구를, 군대를 공부하고 연구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게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기 때문인 것 같아. 심지어 ‘사회학’이 너무너무 좋았던 학부생 때는 ‘내가 어디에 있든 평생 나와 함께 싸워줄 학문’이라고 낯간지럽게 표현하기도 했다? 아무튼 꼭 학술서가 아니더라도 진실하고 예리한 설명이 담긴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두근거렸어. 다른 공간과 다른 조건 속에서 사람들은 다른 행동을 할 거라는 단순한 명제에서는 위로를 얻기도 했어. 세상에 결정된 것이 없다면 다른 무언가를 꿈꿔볼 수도 있는 거지.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공부할 때마다 내 삶과 연결되는 여러 물음들이 생겨나고, 다른 이들의 질문과 연결되고, 이미 있는 설명들에 의문을 품고 불평도 하고 ‘함부로 비판’도 하면서, 내가 스스로 자료를 찾아서 읽고 무언가 다른 말을 해볼 수 있겠다고 기대하는 건 무척 두근거리는 일이었어. 무엇보다도 연구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세상과 관계에 좀 더 애정이 생긴 것 같아. 재밌는 글을 읽었을 때 세상에 이걸 아는 건 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실제로 그럴 리 없지만) 오타쿠처럼 막 늘어놓을 때, 사람들과 함께 질문에 연루되고 나름의 답을 내놓으면서 동료를 만들고 함께 무언가를 기획할 때, 내 마음이 계속 흔들리는 느낌. 그걸 좇아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 다 용서되는 반짝반짝 빛나는 세상이 아니고 앞으로도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들을 반복해야 하겠지만, 아직은 앞을 알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것 같아.

왜 우리는 이 일을 계속 하려는 걸까?
수정은 졸업하고 나니까 좀 어때? 수정의 대학원 생활을 이끌어 왔던 건 뭐였어? 그리고 앞으로의 수정을 이끌어 갈 건 무엇인지도. 무엇이 수정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
선우가

글. 김선우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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