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첫 강의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다. 결과적으론, 절반의 성공, 그리고 절반의 실패였다. 성공한 부분이 있다면, 나는 그다지 떨지 않았다. 물론 긴장됐고, 불안했으나 많이 표시 내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 얘기하길 좋아하는 내 성미 탓도 있겠지만, 수강생들의 우호적인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짐짓 흥미롭다는 듯 내 얘길 들어줬고, 이따금 고개를 끄덕여 반응해주기도 하는 ‘고마운’ 학생들이었다(이 학생들은 학기가 끝날 때까지 일관적이었기에 고마운 여운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학기말까지도 남아있다).
절반의 실패란,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당연히 강의 시간에 늦게 도착한 건 아니었다. 강의 종료 시간을 맞추는데 실패했을 뿐... 지난 편에서 밝혔던 것처럼, 강의를 준비하는 내내 나는 당황스러움을 피할 길이 없었다. 가장 어려웠던 건 역시 강의의 분량을 가늠하는 일이었다. 무턱대고 많은 양을 준비할 능력도, 시간도 없다보니 최적의 분량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밤을 새워 준비한 양이 피피티 스무 장이었다(참고로 나는 강의 내내 구글 문서-프레젠테이션으로 피피티를 준비했다. 이 프로그램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차차 논하기로 하자).
전자교탁으로 피피티를 강의실 전면에 띄운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선 강의의 제목을 띄워놓고 몇가지 공지사항을 전한 뒤,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첫 강의의 주제는 ‘미디어 효과론’이었다). 음, 긴장도 풀겸 일일이 학생들 이름을 호명하고 눈을 맞춰가며 출석을 불렀다. 80여명의 이름을 부르고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한 시간 십오 분 강의를 하고 십오 분을 쉰 뒤 다시 한시간 십오 분을 해야하는 연속 강의였는데, 나는 첫 번째 한 시간 십오 분을 다 채울 수 없었다. 피피티 스무 장 중 열한 장 쯤이 넘어갈 때,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지나고 있었다. 시계와 강의록을 번갈아 곁눈질하며 동태를 살피다가, 이내 솔직해지기로 마음 먹었다. "(말씀 드렸듯이) 제가 (강의는) 처음이라, 분량 조절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바로 다음 시간에 할 말을 남겨두려면 지금부터 좀 오래 쉬어야할 것 같아요… 삼십 분(!!) 쉬었다가 다시 뵙겠습니다..!".
첫 시간에 피피티 열 장하는 데 한 시간을 못썼는데, 두 번째 시간에는 뭐가 크게 달랐겠는가. 삼십분을 쉬고 시작한 두 번째 시간은 심지어 공지사항도 없었기에 더 일찍 끝났다. 한 학생이 끝나고 건의를 하기도 했다. 일찍 끝내실 생각이면 쉬는 시간을 짧게 갖고 더 일찍 끝내자고… 민망함의 연속이었다. … 첫 강의를 했다며 술을 사주는 선배들에게 이런 저런 하소연과 영웅담을 늘어놓으며 정신없이 저녁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한 시간 반 동안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에, 그날의 패인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을 몇 가지로 압축했다. 첫째, ‘미디어 효과론’이 내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 문화연구자로서 공부하는 입장에서, 미디어 효과론은 비판의 대상이자 ‘깊게 공부할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때문에 그 주제에 대해 매우 단편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고, 강의에서 풍부한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다. 둘째, 그럼에도 나의 공부가 모자랐다. 잘 모르는 분야였다면, 더 열심히 더 많은 준비를 해서 전문가처럼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강의를 처음 한다는 핑계로 나의 성실하지 못함을 가릴 수는 없었다.
두번째 패인이 더 문제였다.
- 다음 이시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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