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소진되지 않기 위해
- 정보영
- 2019년 6월 27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2월 18일

글을 쓰고 있는 이 지면은 ‘칼럼’이다. 칼럼은 아무래도 어떠한 방식의 주장을 하는 형태로 작성되는 편이 더욱 적절하겠지만, 오늘은 특별히 주어진 답이 없어 한 켠에 대충 접어 놓았던 개인적인 고민들을 차곡차곡 꺼내어 정리해 보고자 한다. 조금 과한 전시일 수도 있겠지만 이 것의 공유가 사회적인 것, 공통적인 것을 만들 수 있을지 거친 질문을 품어 본다.
그것은 오랫동안 ‘말문이 막혀’ 있던 생활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미디어와 문화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인데, 그런 내가 여러 해 전부터 ‘뉴스’를 싫어하게 된 것이 숨겨왔던 나의 창피한 비밀이자 고민이다. 한참 많은 것들을 배워나가기 시작할 때는, 모든 뉴스와 모든 사건, 모든 담론이 분석과 비판의 대상이었다. 지면과 시간이 된다면 SNS나 다른 매체를 통해 열심히 서너 줄이라도 써가며 비판을 하고 완결된 주장을 정리했다. 정제되지 못한 글을 보고 누군가가 의견이나 반박을 달면 신이 나서 응전했고, 화를 내고 조소하면서, 어떤 에너지에 차 있는 나를 감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사건사고 소식을 듣는 일이 지나치게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모든 주제에 대해 완결된 주장은커녕, 논지를 전개하는 것 자체에 확신이 없었다. 활동이랄 것도 없었지만 SNS에 글을 올리는 행위를 그만두고 많은 글들을 삭제했다. 뉴스와 기사를 보는 빈도가 대폭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니 전에 없던 일이 생겼는데, 몇 개의 짧은 문장 이상으로 길게 말과 글로 무언가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기 어려워진 것, 그리고 과도하게 늘어난 말을 적시에 야무지게 끝내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문제들에 언제나 면밀히 귀를 기울여야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증상들은 매우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나의 흉포한(?) ‘관종’ 기질을 위축시킨 것은 좋았지만, 미디어 연구하겠다는 사람이 미디어를 피로해 한다니... 이것 참, 거 참...
원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두 가지인 듯 했다. 첫째는 사건들에 지나치게 이입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 때문에 지나치게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감해졌기 때문인가 싶었는데, 오히려 과(過)감에 따른 공포 때문이었다(아니면, 어쩌면 이 둘은 정반대의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런 피로사회 속에서 소진되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마는, 삶의 어떤 부분들이 앞으로도 역병처럼 다가올 것임을 ‘예감하는 것’이 특히 말문을 막히게 했다. 폭발적인 분노와 냉소는 언제든 몸과 머리 속에서 여러 언어를 통해 나올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매번 부딪치는 삶의 단면들과 만나면서 기어이 중화되고야 마는 모종의 연약한 지속성, 그리고 단발적인 동시에 이토록 지긋지긋하게 장기적인 내 감정들이 갖는 치밀하지 못한 방향성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나를 기다릴 찬란한 전망이라던지 여유로움, 진보, 발전 같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을 상상하지 않게 된 지 정말로 오래된 입장에서, 여전히 한결같은 모든 일들에 감각을 벼리고 분출하는 것은 그 자체가 동시에 어떤 노동이었던 것이다.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혹은 많은 것에 깊게 이입될수록, 더욱 사건이나 문제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하기 어려워진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스킬’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나의 심신의 건강을 위해 다른 취미생활 갖기’. ‘연구자와 연구 대상 사이의 거리 두기’. ‘SNS는 인생의 해악이므로 계정 해제’, ‘하여튼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기’ 등등등. 일상생활에 관해서든, 연구문제에 관해서든, 어느 정도의 ‘내려놓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이 방법들은 어느 정도 효과적이지만, 근본적인 방법은 아닐 것이다. 이입되기/하기를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 생에서 어느 주제나 소재에 이입이나 천착을 할 수밖에 없는 고유의 질곡과 계기를 가지고 있고, 만약 그 계기를 생의 길 어딘가에 배치하기로 선택했다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니까 어차피 내가 억지로 거리를 넓히려고 한다고 해서 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계속해서 다시 돌아오고 끈질기게 피부의 진피 속까지 붙어 있다가 불시에 살에서 ‘배어나온다’.
이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중이고, 명확히 내린 답은 아직 없다. 다만, ‘다만 화내기 위해’ 사건을 마주하지 않기, ‘나의 화를 다른 힘으로 바꾸어 내기’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히 느끼고 있다. ‘바꾸어 내기’가 조금 오해가 있는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피로를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갈 생각이다. 소진되지 않기 위해서, 어렵지만, 감정의 승화나 특정한 냉소로의 환원과는 다른, 감정을 토대로 한 어떤 전환을 생각한다.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좋은 사람들과 고민 전시회를 열어서 엉망진창 나열하면서 공통적인 것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앞에 언급했던 ‘내려놓기’의 스킬을 적절하게 병행하면서 계속해서 고민을 회피하지 않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솔직히 이 글을 쓰면서도 마지막 문단이 제일 어렵다(방법을 확신하면 결론부가 더 잘 쓰이겠지). 여하튼 나는 이 문제에 대해 특별한 답을 내리지 못했기에 계속해서 분투할 생각이다. 그러다가 힘들면 또 힘들다고 ‘징징 와장창’ 할 생각이다.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니겠지만 그 또한 받아들이면서, 같이 분투하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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