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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지수] 질적 연구를 할 때 생각하면 좋은 것들

최종 수정일: 2022년 2월 18일



  문화연구를 포함하여 사회학, 인류학, 인문학 전반과 친연성을 갖는 질적 연구(qualitative research)는 사회현상을 인간의 생각과 행동, 의미,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연구 방법이다. 질적 연구는 사회의 객관적 실체의 검증보다는 행위자들의 상황적인 맥락과 구성 과정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흔히 연구를 통해 ‘사회적인 것’을 고민하는 많은 연구자들과 친연적인 관계에 있다.


  자신의 연구관심사가 질적인 해석과 직접 맞닿아 있거나, 연구를 하기 전 특히 에세이나 르포식 글쓰기에 익숙해 있는 사람이라면, 규범적이지 않은 글쓰기를 지향하는 질적인 접근과 분석이 상당히 친숙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질적) 연구방법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않거나, 연구에 필요한 프로세스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건너뛴다면 끔찍한 후폭풍(?)을 겪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질적 연구 방법론’에 대한 구체적이고 꼼꼼한 학습 없이 연구를 수행한 결과 연구 자체를 다시 설계하거나 애써 수집한 데이터를 폐기해야 하는 등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소진을 여러 번 겪었다. 질적 방법론의 패러다임과 절차 자체는 좋은 방법론 도서들이 충분한 설명을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특별한 매뉴얼 없이 연구를 수행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실제 프로세스에서 어떤 문제를 특히 고민하거나 염두에 두면 좋을지를 적어보았다.


 

연구 계획서 만들기


  연구를 하기에 앞서서 연구자의 문제의식, 연구대상과 연구문제, 연구목적(연구의 함의와 활용도), 이를 위해 동반될 수 있는 연구 방법들(이 경우 각 방법이 필요한 대상은 무엇이며 내 연구에서 어떤 파트의 어떤 영역에 이 방법이 속할 수 있는지)을 정리해 본다. 이것은 그냥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 그 자체라는 점에서 모든 분야의 연구자에게 중요하기도 하지만, 특히 질적 연구에서처럼 연구자와 연구대상과의 관계를 설정하거나 여러 위험성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실히 ‘내 언어로’ 정리해 두어야 할 절차이기도 하다.


  많은 대학원 수업에서 중간단계에 요구하는 ‘연구 계획서’가 바로 이 과정을 보기 위한 것인데, 이 계획서를 특별히 거창한 과정을 통해 만들 필요는 없다. 나의 경우 연구 계획서가 좀더 그럴 듯 해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연구주제와 유관된 여러 개념과 현상을 현란하게 늘어놓았다가 결국 실제 연구에 아무 쓸모 없는 종이쪼가리를 연성한 바 있다. 연구 계획서를 쓰는 이유는 결국 나의 실제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저 내가 무엇을 보여주길 원하는지, 무엇을 왜 분석하고 싶은지, 그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인지, 그간의 다른 연구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무슨 방법을 쓸 수 있고 이 경우 무엇이 필요하며 무슨 위험이 따르는지, 그래서 내가 향후 어느 부분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를 혼자서 스스로 잘 정리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질적 연구의 연구계획서에는 형식적인 측면보다는 내용적인 측면에서의 고민과 성찰이 기록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에버노트 같은 나만의 연구노트에 내가 스스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들로 1차적으로 정리한 후 이것을 다시 학술의 언어를 통해 번역하면서 2차적으로 살을 입혀 나간다는 느낌으로 진행하면 조금 더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구자의 자기객관화 문제를 성찰적으로 고려하기


  많은 경우 질적 연구자의 연구주제는 연구자 본인의 생애사적이거나 주관적인 경험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굳이 자문화기술지와 같은 특정 연구방법을 쓰지 않더라도). 그런데 스스로의 경험이나 정동, 흥미, 기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제들을 학술의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에서는 항상 의문과 어려움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혹시 이 주제를 나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내가 자기정당화를 하고 있는 것이면 어떡하지? 연구자와 연구 대상의 관계 및 거리 설정의 문제도 따라온다. 방법론의 성격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연구주제와 대상이 연구자의 관심사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든 연구가 필연적으로 주관성과 자기성찰성을 갖기는 하지만, 어쨌든 양적 연구의 경우 실험 설계도를 짜고 조작적 정의, 변수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직간접적으로 거리를 조정하게끔 만드는 프로세스가 명시적으로라도 생겨나는 반면, 개입과 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질적 연구는 주관성의 문제와 자신이 개입된 현장에 대한 고민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질적 연구 관련 교재에서 연구자의 ‘성찰성’이나 ‘간주관성’과 같은 개념들은 바로 이 문제 때문에 계속해서 강조되곤 한다. 연구자는 많은 경우 분석의 단계에서 ‘연구대상이 제공한 자료를 내가 오독하지는 않았는지’, ‘해석과 코딩이 자의적이지는 않은지’ ‘연구대상과 나의 관계설정은 적절하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말이 쉽지 사실은 엄청난 고통과 시행착오를 동반한다. 연구자의 경험을 가로지르는 글쓰기에서 요구되는 이차적 ‘번역’의 기술은 어쨌든 분명히 연구대상에 대한 연구자의 분리나 자기객관화를 요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행위자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개입하는 질적 연구의 속성 자체가 이 과정을 일정하게 가로막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주제에 연구자가 깊이 개입되어 있을 경우 연구대상에 어느 정도 동일시된 자신을 빼내어 연구자의 위치에 놓는 데는 대단한 고통이 따른다(매순간 자신의 위치성을 객관화하고 의심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연구자의 불안정함과 감정의 소진은 덤이다).


  기술적으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 가능한 역사적이고 통계적인 사료, 당대의 다양한 비평집과 ‘연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자료를 포함시키는 삼각기법과 같은 다양한 연구방법들이 이용될 수 있다. 그렇지만 질적 연구자의 자기객관화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은 아래와 같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중간단계의 공유와 피드백


  비슷한 연구를 수행하는 다른 연구자들과 절차상에서의 문제를 공유한다. 그럴 수 없었던 환경에서 이 과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연구 수행이 심각하게 어려워지는 경험을 했다. 굳이 질적 연구가 아니더라도 모든 분야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사항이긴 하지만, 너무 뻔한 것 같은 이 문제를 굳이 다시 중요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실제로 이런 과정이 학문 공간에서 쉬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지도교수님과의 면담이나 학교 수업에서의 중간단계 보고, 학회 발표회나 학과 공개발표 등의 공식적인 절차가 있지만 이는 화자와 청자의 관계가 이미 특정한 형태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연구자의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일상과 밀착된 선상에서 논하면서 피드백을 받는데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많은 학회에서 등장하는 발표와 토론들이 ‘내 할말만 하는’ 혹은 ‘적절하게 행정적으로 처리되는’ 전시적인 속성을 갖는 것에는 여러 사정이 있다).


  결국 제대로 된 연구 수행을 위해서는 같은 단계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동료의 ‘평평한 상태에서의 피드백’, 상대의 속성과 덱을 확인하고 내 카드를 꺼낼 필요가 없는 대화들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물론 연구자 개인의 성향이 전부 다르고 다양하기에 연구자가 원하는 완벽한 피드백을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특히 한국에서 그다지 방법론적 논의의 풀이 넓지 않은 질적 연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간단계에서의 자기객관화에 대한 피드백과 제언을 듣고, 연구수행 과정에서 현장에 대한 개입으로 인해 따르는 연구자의 소진을 극복하는 계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학문 장 안에서 수평적인 동료의 풀과 그 풀이 구축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이것을 올바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대단히 중요한 지점이다. 학교 안팎에서 공식/비공식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다양한 내부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서로의 연구수행에 대한 고민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멀리 갈 것 없이 신문연에도 아주 좋은 기회들이 많다).

  인간의 삶을 단발적인 기억이 무수하게 박혀 있는 긴 원단으로 비유한다면, ‘연구’는 곧 연구자 자신의 ‘경험의 원단’을 뒤져서 박혀 있던 조각들을 나열하고 의미화하며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인 것을 고민하는 질적인 글쓰기와 그 실천은 서로의 경험의 원단을 겹쳐 보고 무늬를 읽어 나가는 작업에 직접 결부되어 있으며, 더 무수한 형태로 셀 수도 없는 삶들 속에 아로새겨진 패턴과 흐름들을 상상하고 모아나가기 위해, 그리고 연구자로서의 ‘나’와 사회를 직접적으로 관계 맺게 하기 위해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자 전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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