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4일, 대구의 한 백화점에서 찍힌 영상이 화제다. 1분 남짓의 짧은 영상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신발을 구매하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을 비춘다.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뛰어내려가면서까지 신발을 향해 달려가는 일군의 무리 뒤로, 영상을 촬영중인 화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거 좀비 실사판 같아’ 언론 또한 영상 속 사람들을 ‘좀비’에 빗대었고, 거침없는 질주가 낳은 ‘충격적인’ 스팩터클은 SNL과 같은 코미디프로그램들을 통해 패러디 되었다.
여기서 잠깐 투머치인포메이션TMI을 풀어보자. ‘떼’의 뜀박질은 나이키에서 발매한 ‘에어조던1 로우 골프’라는 신발을 향했다. 긴 이름을 지닌 해당 신발은 오늘날 스니커즈씬의 상징경제 속 정점에 있는 ‘에어조던1’의 골프화 버전이다. 신발의 아웃솔(OutSole/밑창)을 제외하면 에어조던1로우의 원안-이를 스니커씬에서는 OG(Original)이라 부른다-을 거의 그대로 적용시켰으며, 에어조던1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시카고컬러-농구선수 마이클조던이 뛰었던 미국프로농구(NBA)팀 시카고 불스의 상징 색-인 검정/빨강색을 포함해 울프그레이, 트리플화이트 등의 색으로 발매되었다. 사람들은 바로 이 신발을 사기 위해 내달렸다.
언론과 다수의 커뮤니티는 이 충격적인 스펙터클에 관한 나름의 해석들을 내놓았다.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희소한 신발을 비싸게 되파는 리셀의 대중화’였다. 실제로, 신발 리셀 플랫폼 KREAM을 살펴보면 해당 신발은 발매가가 대략 18만원이지만 2월 4일 현재 50-60만원 선에서 재판매되는 중이다. 그러니 정가로 신발을 구매할 시, 리셀을 통해 구매가의 2-3배를 챙길 수 있다. 한국사회의 스니커즈와 관련한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요술봉, '슈테크'-신발을 구매하는 재테크-담론의 또 다른 변주다. 백화점에서 발생한 촌극은 한국사회의 생경한 현상들이 자주 그렇듯, 결국 청년세대의 ‘특별한 재테크’라는 세대론 네러티브를 통과해 소화되었다.
’재테크’라는 비유는 리셀을 일종의 금융수익을 통해 자산을 불리우는 활동으로 간주하며, 이때 신발은 일종의 금융상품이다. 물론, 리셀마켓이라는 일종의 2차시장의 플랫폼들은 거래 체결가의 오르내림을 차트화해 보여주고, 때론 플랫폼이 ‘주식처럼 시세 예측하여 똑똑한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소개한다. 그러나 사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신발의 선착순구매를 통해 ‘재테크’를 이룩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한정판 신발의 경우 발매에 며칠 앞서 이미 리셀마켓에 입찰이 붙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신발은 초국적으로 발매되고 리셀마켓 또한 초국적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발매 일정은 국가에 따라 시차를 지닌다. 즉, 신발의 가치는 예측의 대상이 아니며 ‘선착순’이나 ‘응모’ 이전부터 아주 투명하게 관찰 가능하다. 어쩌면 한정판 신발을 구매하기 위해 발매일 전날부터 매장 앞에 텐트를 치거나, 당일 이른 새벽부터 줄을 서는 행위는 ‘노동’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다른 맥락이지만 불규칙적으로 소매점을 통해 발매되는 신발들을 ‘사냥’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이들은 있다)
더군다나 추운 날 이른새벽부터 줄을 서 구매할 기회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구매할 수 있는 수량이 제한되기에 ‘재테크’가 될 수 없다. 신발의 인기가 높을수록 구매할 수 있는 수량은 적다. 소매점은 한정판 신발을 ‘1인1족 구매’제도로 판매한다. 구매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구매를 위해 응모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선착순을 하는 경우 또한 잦다.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린 뒤에, 다시금 ‘선정’되어야 신발을 구매할 수 있는 일도 파다하다. 코로나19이후 보편화된 온라인 응모(Draw) 역시 마찬가지다. 브랜드 공식계정 뿐만 아니라 전국의 수 많은 소매점 단위로 불규칙적으로 한정판 스니커즈 응모행사가 열린다. 하여 당첨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발매 정보를 알려주는 SNS계정, 커뮤니티 등을 전전하며 하루 중 수 십건의 응모를 진행해야한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정판 신발을 구매할 수 있는 확률은 아주 낮다.
정리하자면 개인이 1차시장으로부터 한정판 신발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방법은 거의 전무하다. 외려 신발은 2차시장 내로 들어온 뒤에 더욱 금융상품에 가깝다. 하지만 2차 시장은 투명한 가치를 응모의 성실함이나 정동적 몰두를 통해 ‘운좋게라도’ 획득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여긴 리셀마켓/리셀미디어/1차생산자들의 적극적 공모관계에 의해 불투명하게 움직이는 곳이다. 그러니 이른 아침 백화점에서 일어난 질주를 설명하기에 슈테크는 적절한 개념이 아니며, 질주하는 떼와 무리는 자산을 불리우거나 한탕을 노리는 '좀비'가 아니다. 실체없는 '슈테크'의 반대편에서, 물질문화로서 스니커즈현상을 더욱 두껍게 쓰는 문화연구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담론으로서 '슈테크'가 내고 있는 효과들 역시 살펴야 한다. '뽑기'를 은밀히 재테크로 바꿔쓰는 정치학. 지난한 과정을 거쳐 비싸게 되팔 수 있는 신발을 운좋게 ‘한 번’ 얻을 수는 있으나, 이 경험을 지속적으로 재생할 수는 없기에 '슈테크'란 없다. 그럼에도 '슈테크 담론’은 투명한 뽑기를 위해 들여야 할 에너지와 정동의 식민화는 가리고, 이제 당신도 금융경제의 일원이라는 기만적인 행위자성만 부여한다. 실체는 없고 ‘느낌’만 남은 재테크에 대한 투명한 감각, 그것은 불투명한 공모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진짜 금융경제를 가리는 장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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